꿀꿀 운세다채로운 운세, 나를 위한 이야기

EP.35 · 48 / 73

생시 보정

인생의 사건을 거꾸로 맞춰 윤달의 시를 찾는다. 청토끼 추격전과 최약체의 최후.

한글 약 2,767자 · 읽는 시간 약 7분

배는 별구름을 헤치며 달렸다. 앞쪽 멀리서 토끼 귀 돛이 까딱였다. 잡힐 듯 말 듯한 거리였다.

연이—자, 거꾸로 걷기. 윤달 씨, 제일 최근 일부터 말해 줘요.

윤달—최근이면, 숙녀분한테 궁합 봐 드리다 네오 씨한테 멱살 잡힐 뻔한 일요?

연이—그거 말고. 큰일. 인생에 금 간 날 같은 거요.

윤달—큰일이라. 앱을 받은 날이 있죠. 삼 년 전, 장마 첫날이었어요.

연이는 메모장에 적었다. 앱, 삼 년 전, 장마 첫날. 쓰는 동안 윤달이 고개를 갸웃했다.

윤달—어. 방금 제가 뭐라고 했죠?

연이—앱, 삼 년 전, 장마 첫날.

윤달—아, 맞다. 숙녀분 메모 덕분에 제 인생이 저보다 숙녀분 수첩에 더 잘 남겠네요.

웃는 소리가 이상하게 얇았다. 연이는 다음 쪽을 넘겼다. 손에 힘을 주어 글씨를 꾹꾹 눌러 썼다.

모카—그 생시 보정이라는 거, 정확히 어떻게 하는 건데.

윤달—사건마다 그날 하늘에서 별이 어느 집을 지나갔는지 맞춰 봐요. 맞는 시각이면 다 들어맞고, 틀린 시각이면 어긋나요.

연이—열쇠 구멍에 열쇠를 하나씩 꽂아 보는 거네요.

윤달—정확해요. 그리고 제 첫인상. 그게 제일 큰 열쇠예요. 현관 기억나죠?

모카—첫인상이면 쉽지. 사기꾼.

윤달—정답이에요. 다들 그렇게 말해요. 처음 보자마자.

탁자 유리 아래 원이 빙그르르 돌았다. 동쪽 문턱이 깜빡였다. 낮의 시간이 지워지고, 밤과 새벽만 남았다.

연이—그다음. 어릴 때 크게 다친 적은요?

윤달—다친 적이라. 음. 있었던 것 같은데.

윤달의 말끝이 흐려졌다. 장갑 낀 손가락이 허공을 더듬었다. 기억이 손에 잡히지 않는 사람처럼.

윤달—이상하네요. 제 얘긴데 남 얘기 같아요.

뱃머리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네오는 별바다를 본 채 말을 이었다.

네오—열한 살. 나룻배에서 떨어져 왼팔이 부러졌다. 할머니가 업고 십 리를 뛰었다.

윤달—…어떻게 알아요, 그걸?

네오—재성의 섬에서 네가 말했다. 내 생일을 세 번째로 물어보던 날에.

연이—그걸 다 기억해?

네오—그렇게 신경 쓰는데 네 말을 어떻게 잊겠어.

모카—와. 저건 사랑이냐, 집착이냐.

네오—경계 근무다.

윤달은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고개를 숙였다. 어깨가 한 번 떨렸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윤달—다들 저를 잊는데, 하필 고양이님이 기억하고 있었네요.

네오—나는 원래 잘 잊지 못해. 불평하려면 다른 고객센터를 찾아야겠네.

연이—우주한테 불평 넣는 거 나 해 봤는데. 안 받아.

연이는 메모장에 적었다. 열한 살, 나룻배, 왼팔, 할머니. 그리고 그 옆에 작게. 기억한 사람, 네오.

네오—하나 더 있어. 닭 울기 전에 태어났다고 했잖아. 할머니가 늘 그 얘길 하셨다면서.

유리 아래 원이 다시 돌았다. 별 하나가 열한 살 자리에 끼워졌다. 다른 별이 장마 첫날 자리에 끼워졌다. 동쪽 문턱이 좁혀졌다.

윤달—동트기 직전의 두 시간. 묘시 안이에요. 거기까진 원래 알았어요. 문제는 분이에요.

연이—분까지 알아야 돼요?

윤달—청토끼 계약서에 그렇게 써 있었어요. 본인이 분까지 말해야 모래시계가 돌아온다고. 아무도 못 할 줄 알고 넣은 조항이죠.

토끼 귀 비행선이 바로 앞이었다. 모카가 돛줄을 감아쥐고 배를 옆으로 붙였다. 두 배가 쿵 부딪혔다.

청토끼—어머머! 무단 승선은 연체료 열 배예요!

모카—연체료는 네 귀로 받아 갈게.

비행선 갑판 위로 종이가 눈보라처럼 날아올랐다. 대출 계약서들이었다. 종이마다 서명란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청토끼—서명만 하시면 바로 별빛 지급! 이자는 기억으로 받아요~

계약서들이 그물처럼 엉겨 들었다. 연이의 손목에 종이 한 장이 찰싹 붙었다. 서명란이 저절로 연이의 이름을 쓰려고 했다.

연이—내 손이 혼자 움직여!

윤달—손 이리 줘요, 숙녀분.

윤달이 장갑을 벗었다. 손바닥 한가운데 검은 구멍이 있었다. 계약서의 잉크가 구멍 속으로 줄줄 빨려 들어갔다.

종이들이 하얗게 비었다. 서명란이 닫혔다. 그러나 윤달의 손바닥 구멍은 한 뼘쯤 더 넓어져 있었다.

연이—그거 쓰면 커진다면서요!

윤달—벌금은 꼬치 열 개죠? 모카 씨 앞으로 달아 둘게요.

모카—나한테 달지 마!

모카가 품에서 꼬치 다발을 꺼내 숯불 깡통에 꽂았다. 매운 연기가 갑판을 덮었다. 청토끼가 재채기를 했다.

청토끼—에취! 이거 고추 연기잖아요! 영업 방해!

모카—섬 특제야. 눈물 나지? 그게 맛이야.

연기를 뚫고 넷은 비행선 안쪽 금빛 회랑으로 뛰어들었다. 벽마다 금고 문이 줄지어 있었다. 맨 끝 문 앞에 청토끼가 서 있었다.

청토끼—막다른 골목이네요~ 그래도 소용없어요. 묘시 고객님은 분까지 말 못 하시잖아요.

청토끼—계약서 제7조. 본인이, 본인 입으로, 태어난 시각을 분까지. 아무도 대신 못 해요~

윤달—맞는 말이에요. 저는 이제 정말 몰라요.

윤달의 얼굴 가장자리가 또 번졌다. 금빛 회랑의 빛이 그를 비껴갔다. 거기 없는 사람을 비추지 않으려는 것처럼.

연이—(모른다고. 아니야. 조각은 다 모였어. 맞추기만 하면 돼.)

연이는 메모장을 넘겼다. 장마 첫날. 열한 살, 왼팔. 닭이 울기 전. 그리고 첫인상, 사기꾼.

연이—윤달 씨. 할머니가 닭 울기 전이라고 했죠. 그 동네 닭은 몇 시에 울어요?

윤달—네?

연이—동네마다 달라요. 우리 시골 할머니 닭은 다섯 시 반이면 울었어요. 정확해서 시계 대신 썼어요.

윤달—우리 할머니도. 닭이 울면 밥을 안쳤어요. 밥이 다 되면 여섯 시 뉴스가 시작했고.

모카—밥 짓는 데 몇 분 걸려.

윤달—가마솥이라. 삼십 분쯤. 그 전에 내가 나왔대요. 닭보다 먼저 울어서 할머니가 웃었다고.

유리 대신 연이의 메모장 위에서 별들이 맞물렸다. 장마 첫날의 별, 열한 살의 별, 닭 울기 전의 별. 하나의 자리에서 다 들어맞았다.

연이—그럼 다섯 시 반보다 조금 전. 다섯 시 이십 분쯤.

네오—열한 살 자리도 그 시각에 맞는다. 내가 셌다.

청토끼—어머, 추리 놀이 귀엽네요~ 그래도 본인 입으로 해야죠. 본인이 기억을 못 하는데.

연이는 메모장을 윤달에게 내밀었다. 그 쪽에 적힌 글씨들이 다 윤달의 이야기였다. 윤달은 종이를 보았다. 오래 보았다.

연이—기억 안 나도 돼요. 읽으면 돼요. 이건 윤달 씨 거예요. 내가 받아 적었을 뿐이에요.

윤달—남이 써 준 제 인생을 제가 읽는 거네요.

연이—남 아니잖아요. 동료지.

윤달이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읽었다. 장마 첫날, 나룻배, 왼팔, 할머니, 닭. 마지막 줄에서 목소리가 떨렸다.

윤달—새벽 다섯 시 이십 분. 닭보다 먼저 운 아이. 그게 저예요.

청토끼 목의 모래시계에 금이 갔다. 연분홍 모래가 쏟아져 나왔다. 모래는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공중을 흘러 윤달의 손바닥으로 들어갔다.

청토끼—안 돼요! 그건 제일 비싼 거라고요!

윤달의 얼굴 가장자리가 또렷해졌다. 금빛 회랑의 빛이 그제야 그를 비췄다. 모카가 소리 없이 엄지를 들었다.

윤달—숙녀분 얼굴이 선명해요. 아니, 제가 선명한 건가.

연이—둘 다요.

그때 비행선 전체가 크게 기울었다. 창밖이 어두워졌다. 검은 달이 비행선 바로 위에 떠 있었다.

하늘에서 검은 손들이 내려왔다. 손가락이 길었다. 손들은 연이를 지나쳐 곧장 청토끼에게 향했다.

흑월—묘시를 잃은 손은 쓸모가 없다. 최약체라고 스스로 말했지. 정직하구나.

청토끼—회, 회장님! 저 아직 지점 세 개 남았어요! 실적 보고서도 있고요!

흑월—거두어라.

검은 손이 청토끼의 조끼를 움켜쥐었다. 반짝이던 명함들이 손가락 사이로 부서졌다. 청토끼의 다리가 바닥에서 떠올랐다.

연이—잠깐. 놔!

연이는 생각보다 몸이 먼저 나갔다. 청토끼의 앞발을 잡아당겼다. 모카가 연이의 허리를 붙잡았다.

모카—너 미쳤어? 저거 사채업자야!

연이—알아! 그래도 먹히는 건 싫어!

네오가 투명해진 손으로 날을 그었다. 검은 손가락 두 개가 끊겼다. 조끼만 적의 손에 남고 청토끼는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조끼를 벗은 청토끼는 생각보다 작았다. 귀가 한쪽 접힌 평범한 토끼였다.

청토끼—…고객님. 이건 무이자로 해 드릴게요. 딱 한 번.

연이—고맙다는 말을 그렇게 해?

청토끼—최약체는 원래 제일 오래 살아남는답니다~ 폐업 정리 세일은 다음 하늘에서!

청토끼는 구명보트에 뛰어올랐다. 보트 꽁무니에 폐업 정리라고 쓴 종이가 펄럭였다. 별구름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배로 돌아오자 윤달이 갑판에 주저앉았다. 오른손을 펼쳤다. 연분홍 모래가 손금 사이에 반짝였다.

그런데 손바닥 한가운데 구멍은 그대로였다. 조금도 줄지 않았다. 모래가 그 가장자리를 맴돌다 빨려 들어가지 않으려고 버텼다.

연이—시를 찾았는데. 왜 안 닫혀요?

흑월—시는 도둑맞은 것이고, 구멍은 내가 판 것이다. 도둑이 사라져도 구멍은 남는다.

흑월—그 구멍은 나와 함께 닫힌다. 나보다 먼저 닫히는 일은 없다.

검은 달이 천천히 멀어졌다. 갑판 위에 고요가 내려앉았다. 윤달이 장갑을 다시 끼었다. 손가락 하나하나를 공들여.

윤달—그럼 끝까지 따라가야겠네요. 숙녀분 여행에.

연이—웃으면서 말하지 마요. 그거 벌금이야.

윤달—괜찮다고는 안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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