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해 뒤, 운세 세계의 봄은 달이 두 번 차오르는 밤에 시작됐다. 세계수 끝마다 은빛 연꽃이 피었다.
연이의 집 문에는 노란 우산 두 개가 나란히 서 있었다. 하나는 테이프 세 겹, 다른 하나는 금색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
연이—양말 짝 맞지? 오늘은 진짜 확인해 줘.
네오—왼쪽 연보라, 오른쪽 연보라. 합격. 세계를 구할 때보다 오늘이 더 철저하군.
연이—오늘은 결혼식이잖아. 검은 양말 한 짝이라도 들어오면 사건이야.
연이는 흰 면사를 연꽃 뒤에 고정했다. 오늘의 꽃돼지 모습은 저주의 흔적이 아니라, 여행의 첫 몸을 기억하는 선택이었다.
모카—신부 등장 전에 한 곡 간다. 달은 두 개, 사랑은 한 팀. 돌아온 시간 위에 새로 쓴 리듬!
모카가 마이크를 들자 요정들이 발로 박자를 맞춰 날았다. 냄비와 국자도 오늘만은 조용히 무대 옆을 지켰다.
윤달—약식 시간은 달의 각도로 보면 조금 남았지만, 오늘은 두 분이 고르는 순간이 정각이에요.
연이—강새벽, 오늘은 생년월일 묻지 마. 결혼식에서까지 궁합 상담하면 별점 깎을 거야.
스물세 번째 문의 금빛 선이 하객석 한쪽에 열렸다. 선 너머 현실의 벚꽃 강가가 보였다.
서한비—여기 잘 보여요. 저는 우산을 들고 왔어요. 이번엔 제가 먼저 기울일게요.
서한비 옆에는 연이의 엄마가 서 있었다. 손에 든 편지 끝이 떨렸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있었다.
연이—엄마, 나 잘 살고 있어. 여기가 내 집이야. 그래도 엄마 딸인 건 변하지 않아.
문 너머의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리는 닿지 않았지만 입모양은 또렷했다. 행복하면 됐어.
네오—연이야. 지금 이 순간도 네가 고른 거야. 울어도 되고, 웃어도 돼. 다만 내 손은 놓지 마.
연이—너야말로 놓지 마. 한 번 혼자 시간을 되돌렸으면 다음부터는 같이 쓰는 거야.
병하가 연이의 손을 잡았다. 첫 번째 봄에는 닿지 못했고, 두 번째 봄에는 숨겨야 했던 손이었다. 오늘은 모두가 보는 곳에서 잡았다.
네오—박병하로, 네오로, 영냥이로 너를 사랑한다. 어떤 이름이든 숨지 않고 네 곁에 있겠다.
연이—꽃돼지였던 나도, 사람이었던 나도, 내일의 나도 너와 같이 살고 싶어. 우리 결말을 오늘로 닫지 말자.
세계수의 연꽃들이 한꺼번에 피었다. 붉은 실과 금빛 글자, 은하수의 작은 조각들이 두 사람 위로 내렸다.
모카—지금부터 축하 랩 시작! 운명은 판결문이 아니라 둘이 매일 고쳐 쓰는 가사!
윤달—오행이 한쪽으로 기우지 않고 흘러요. 하지만 균형은 오늘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아요. 둘이 계속 맞춰 가세요.
연이—우리 전문이야. 싸우고, 말하고, 다시 손잡기.
네오—별점을 협박 수단으로 쓰는 것도 빼지 마.
하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아무도 빌린 박수를 치지 않았고, 아무도 그 박수를 거두어 가지 않았다.
결혼식이 끝나자 연이와 병하는 세계수 뿌리 아래 자리를 폈다. 멀리 현실의 강가에서도 벚꽃이 한 장 떨어졌다.
서한비—연이 씨, 병하 씨. 다음 달에 또 편지할게요. 이쪽의 봄도 잘 지킬게요.
연이—우리도 여기의 봄을 잘 살게. 소식은 계속 주고받자.
스물세 번째 문이 작은 별로 닫혀서도 연이는 서운하지 않았다. 다음 달이 오면 다시 열릴 문이었다.
네오—행복한가?
연이—응. 평범하진 않지만, 내가 고른 봄이야. 그러니까 나한테는 충분히 평범해.
병하는 연이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대었다. 달빛이 두 사람의 손 사이에서 따뜻한 금빛으로 바뀌었다.
식을 준비하는 세 달 동안 연이는 결혼이 엔딩은 아니라는 문장을 몇 번이나 메모장에 적었다. 두 사람의 약속은 결과가 아니라 매일의 방식이었다.
병하는 자신이 회귀자였다는 사실을 더 이상 영웅담처럼 말하지 않았다. 혼자 견딜 시간은 사랑의 증거였지만, 다시 반복할 방법은 아니었다.
네오—어떤 일이 오든 먼저 말하겠다. 지킨다는 핑계로 또 혼자 사라지지 않겠다.
연이—나도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게. 너를 안심시키려고 혼자 버티는 사람이 되지 않을게.
둘의 혼인 서약은 거창한 예언 대신 짧은 약속들로 채워졌다. 식사를 거르지 않기, 우산을 혼자 들지 않기, 기억이 흐려지면 메모부터 함께 읽기.
모카—거기에 내 공연을 월 한 번 보러 오기도 넣어. 부부 문화 생활에 필수야.
연이—그건 서약이 아니라 티켓 구독이잖아.
결혼식 전날, 연이는 스물세 번째 문을 열어 현실의 강가를 오래 보았다. 가지 않은 길을 후회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곳에도 봄이 온 것을 확인하려고.
서한비는 정류장의 밤이 무서운 학생과 함께 노란 우산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정답을 주지 않고, 버스가 올 때까지 그냥 같이 서 있었다.
연이—한비도 자기 봄을 살고 있네. 첫 번째 봄의 증인에서, 다른 누군가의 봄을 기다려 주는 사람으로.
연이는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왔다. 병하는 현관에서 양말을 정리하고 있었고, 한 쌍은 여전히 짝이 어긋나 있었다.
네오—이건 네 거야. 내 서랍에 넣어 둔 건 네가 먼저 행방불명으로 만들어서야.
연이—결혼 전날까지 양말 재판을 하고 있다니. 진짜 우리답다.
둘은 식장으로 가기 전 찻집의 불을 하나씩 확인했다. 매일 반복했던 작은 일이지만, 이런 일들이 세계의 대형 사건보다 더 길게 두 사람을 지켰다.
세계수 아래에는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의 자리가 모두 있었다. 기억을 잃었던 이, 이름을 빼앗겼던 이, 용서를 고르지 않았지만 함께 다음을 준비한 이들의 자리였다.
윤달—오늘의 결혼은 운이 지정한 사건이 아니에요. 두 분이 매번 다른 선택을 하고도 다시 같은 방향으로 걸어온 결과예요.
연이—그래서 좋아. 정해져 있어서가 아니라, 오늘도 우리가 서로를 고르는 거니까.
달빛 자리에 서자 연이는 세계수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처음 이 세계에 떨어졌을 때는 두려웠던 소리가, 이제는 집의 시계처럼 편안했다.
병하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은 더 이상 미래에서 과거를 되돌리는 손이 아니었다. 지금에서 다음 한 걸음을 함께 내디디는 손이었다.
연이—가자. 우리 다음 봄으로.
[ 운명 복구 완료 · 운세 세계의 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