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세 세계에서의 첫 아침, 연이는 알람 세 개를 모두 끄고 세계수 뿌리 사이의 작은 방에서 다시 잠들었다.
네오—일어나. 세계를 선택한 사람이 첫날부터 지각하면 체면이 뭐가 되지?
연이—세계를 구한 사람에겐 모닝콜 면제권 같은 거 없어?
네오—없다. 다만 아침 사과는 있어. 지금 일어나면 내가 차를 끓여 주지.
연이는 눈을 번쩍 떴다. 작은 주전자에서 연꽃 향이 났고, 창밖으로 모카의 냄비 비트가 들려왔다.
모카—통통 두드려, 아침을 깨워. 오행을 볶아, 향기를 채워!
연이—래퍼 수달 요리사라는 설정, 이제야 완전히 납득했어.
그날부터 연이는 운명 찻집의 작은 상담 테이블을 맡았다. 정답을 줄 대신, 사람들이 자신의 문장을 찾게 돕는 자리였다.
연이—지금 마음은 먼저 달려가고 있지만, 상대의 속도는 조금 느려 보여요. 확인을 재촉하기보다 한 호흡 남겨 두면 어떨까요?
상담을 받던 바람 요정이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연이는 차를 한 잔 더 따라 주었다.
네오—단정하지 않고 선택지를 남겼군. 좋은 상담이야.
연이—당연하지. 내 운명도 내가 골랐는데, 남의 결말을 내가 닫아 버릴 수는 없으니까.
저녁이 되자 스물세 번째 문의 금빛 선이 열렸다. 선 너머로 현실의 연이 자취방과 서한비의 노란 우산이 비쳤다.
서한비—연이 씨, 들리세요? 어머님께서 보내신 편지를 제가 읽어 드릴게요.
편지의 첫 줄은 짧았다. 어디에 있든 밥은 먹고 다니니. 두 번째 줄에서는 잉크가 오래 멈춰 있었다.
서한비—네가 사라진 것은 아프지만, 네가 살 곳을 네가 골랐다니 믿어 보려고 한다. 그곳에서도 네 마음을 잘 보살펴라.
연이—엄마한테 답장할게요. 여기서도 늦잠 자고, 일하고, 좋은 사람들과 밥 먹으며 살고 있다고.
네오—그리고 내가 양말을 챙긴다고도 써.
연이—그건 빼. 내가 너 없으면 양말도 못 신는 사람 같잖아.
서한비—두 분 목소리 다 잘 들려요. 병하 씨, 이제는 이름 숨기지 마세요.
네오—박병하. 네오. 영냥이. 연이가 부르는 이름은 모두 내 이름이야. 이제 하나도 놓지 않아.
편지가 끝나자 금빛 선은 닫히지 않고 작은 별로 변했다. 연이는 그 별을 찻집 창가에 달아 두었다.
모카—수달 랩도 보내 줘. 현실 사람들이 비트를 좀 아나 보자.
윤달—이 문이 있는 한 두 세계는 단절된 게 아니에요. 다만 연이 씨의 삶의 터전은 이제 여기예요.
연이—응. 돌아갈 수 없어서 남은 게 아니야. 소식을 보낼 문을 가진 채, 여기를 삶으로 골랐어.
그날 밤, 연이와 병하는 세계수 뿌리 사이를 걸었다. 뿌리 아래 작은 집들에 불이 켜졌고, 멀리 달의 강이 빛났다.
네오—연이야. 우리도 집을 짓자. 찻집에서 너무 멀지 않고, 모카의 아침 비트에서는 조금 먼 곳에.
연이—좋아. 창문은 크게. 우산 놓을 곳은 두 자리. 그리고 냉장고에는 양말 검사표 금지.
병하가 웃었다. 연이는 그 손을 잡았다. 차가운 금과 따뜻한 나무가 같은 속도로 걸었다.
찻집의 첫 한 달은 아주 느리게 흘렀다. 연이는 매일 상담 기록을 정리하고, 다음 사람에게 전할 문장을 어제보다 조금 더 쉽게 고쳤다.
연이의 상담은 예언이 아니었다. 오행의 흐름을 보여 주고, 그 흐름 안에서 고를 수 있는 길을 같이 비추는 일에 가까웠다.
연이—물 기운이 많다고 다 부드러운 건 아니에요. 너무 많으면 마음이 흘러갈 곳을 못 찾을 때도 있어요. 오늘은 작은 그릇 하나를 만들어 봐요.
병하는 찻집 뒤편에서 깨진 문고리와 낡은 풍경 거울을 고쳐 달았다. 한 번 못을 박을 때마다 연이는 별점을 한 개씩 예고했다.
네오—고객센터 상담원이었을 때보다 문고리 하나 고치는 게 더 어렵군. 그래도 이건 지울 기억이 아니라 남을 집을 만드는 일이야.
저녁에는 모카의 요리가 항상 테이블 한가운데 놓였다. 맛은 매일 달랐고, 대부분은 좋았으며, 가끔은 모두가 물만 마셔야 했다.
모카—실패한 요리도 백업 불가능이야. 그러니까 오늘의 맛을 기억하고 내일 다른 비트로 볶는 거지.
연이—요리를 운명에 비유해서 실패한 맛을 정당화하지 마.
다만 연이는 그 말이 싫지 않았다. 돌이킬 수 없는 날을 버리지 않고 다음 날의 재료로 삼는 법을, 모두가 이미 배우고 있었다.
현실에서 두 번째 편지가 왔을 때에는 서한비의 글씨가 첫 편지보다 반듯했다. 그녀는 학교 상담실에서 새로 일을 배우고 있다고 적었다.
서한비—예전엔 사과도 빚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사과 뒤에 어떤 사람으로 살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배우고 있어요.
연이—한비야, 그건 잘한 선택이야. 그런데 혼자 버티는 것만 시작하지 마. 힘들면 문을 열고 말해.
연이는 자신이 누군가의 구조자가 될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의 모든 짐을 대신 지지는 않기로 했다. 함께 들 자리를 만드는 게 더 오래가는 위로였다.
네오—네가 누군가의 선택을 존중하는 법을 알게 됐군. 그럼 나의 선택도 존중해 줘.
연이—뭔데? 또 혼자서 위험한 계획 짜놓은 거면 무효야.
네오—결혼을 준비하자. 문서에 서명하고, 모두 앞에서 약속하고, 이 집을 우리 둘의 주소로 만들자.
연이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놀라서 눈이 커졌고, 곧이어 보라색 리본과 비슷한 빛이 두 볼에 퍼졌다.
연이—지금 그게 프로포즈야? 문서와 주소부터 얘기하는 프로포즈가 어디 있어.
네오—여기 있네. 그리고 네가 좋다면 다시 할 수도 있어.
연이—다시 해. 그래도 대답은 같아. 같이 살자, 박병하. 네오. 영냥이.
프로포즈라고 부르기엔 너무 병하다운 문장이었지만, 연이는 그가 다시는 이름과 주소를 버리지 않겠다는 뜻을 알아들었다.
둘은 혼인 서약을 쓰기 전, 서로가 두려울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부터 적었다. 사랑은 마음을 읽는 능력이 아니라 묻고 기다리는 습관에 가까웠다.
연이—내 표정을 모르겠으면 추측하지 말고 물어봐. 점술 세계에 살아도 내 마음은 내가 말할 거야.
네오—그 약속이 가장 어렵고, 가장 필요하군. 지키겠다.
[ 달빛 집터 · 두 사람의 새 약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