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꿀 운세다채로운 운세, 나를 위한 이야기

EP.37 · 51 / 73

스물일곱 달집

스물일곱 낙샤트라 사원. 연이의 달은 품는 별 바라니에, 흑월의 머리와 꼬리는 라후와 케투에 있다.

한글 약 2,738자 · 읽는 시간 약 7분

실을 타고 내려온 끝에 붉은 하늘이 있었다. 하늘 아래 돌 사원이 끝없이 이어졌다. 지붕마다 작은 달이 하나씩 떠 있었다.

연이—달이 왜 이렇게 많아요?

윤달—스물일곱 개예요. 여기 하늘은 달이 하룻밤에 한 집씩 묵어 가요. 한 바퀴 도는 데 스물일곱 밤.

모카—달이 민박을 해? 숙박비는 누가 내는데.

윤달—그 질문은 저도 처음 들어요. 기록해 둘게요.

돌계단 양옆으로 붉은 실이 늘어져 있었다. 실은 사원 기둥에서 기둥으로, 지붕에서 하늘로 이어졌다. 바람이 불 때마다 실들이 낮게 울었다.

연이—이 실들, 열두 번째 집에서 본 거랑 비슷한데.

윤달—같은 실이에요. 거기서는 끝을 보여 주고, 여기서는 이어진 걸 보여 줘요. 생과 생 사이로 이어진 인연.

네오—스물일곱 달의 자리를 읽는 방식이야. 동아시아의 숙요에도 이어졌지만, 여기선 베다점의 나크샤트라를 따라가야 해.

모카—그러니까 연애 점 보는 하늘이네.

윤달—정확하게는 업과 인연과 연애요. 셋 다 비싸요.

사원 입구에 돌판이 서 있었다. 돌판에 글씨 대신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머리만 있는 뱀, 그리고 꼬리만 있는 뱀.

연이—머리랑 꼬리가 따로 있어요. 원래 한 마리였던 것 같은데.

윤달—이 하늘의 옛이야기예요. 불사의 술을 몰래 마신 괴물이 목이 잘렸대요. 술이 목까지만 넘어가서 머리는 죽지 않았고요.

윤달—그 머리가 라후, 몸통과 꼬리가 케투. 머리는 해와 달을 원망해서 가끔 삼켜요. 그게 일식이에요.

모카—근데 목이 없으니까 삼켜도 다시 빠져나오겠네.

윤달—맞아요. 그래서 일식은 늘 끝나요. 이 하늘 사람들은 그걸 믿고 기다려요.

연이—그럼 꼬리는요? 꼬리는 뭘 먹어요?

윤달—꼬리는 지나간 것을 먹어요. 기억, 전생, 끝난 인연. 그래서 꼬리 쪽 사람들은 자꾸 뒤를 돌아봐요.

모카—머리는 앞을 먹고 꼬리는 뒤를 먹고. 식성 한번 골고루네.

네오—편식하지 않는 적이 제일 성가시다.

그 순간 하늘의 달 하나가 어두워졌다. 소의 이마처럼 둥근 집에 묵던 달이었다. 검은 그림자가 그 앞을 천천히 지나갔다.

네오—로히니야. 황소자리 쪽에 있는 달의 자리. 저기 머리가 보여.

연이—흑월이에요?

윤달—숙녀분 차트에 그렇게 나와요. 라후, 머리는 로히니. 케투, 꼬리는 반대편 제슈타. 흑월이 숙녀분 하늘에 자리를 깔고 앉은 거예요.

연이—남의 하늘에 무단으로 앉지 말라고!

모카—그거 연체료 열 배로 받자. 청토끼한테 배웠잖아.

돌우물 옆에 네오가 홀로 앉아 있었다. 오른팔을 겉옷으로 덮고 있었다.

연이는 메모장의 밑줄을 짚었다. 네오 손, 나중에 꼭 보기. 이제 더는 나중으로 미룰 수 없었다.

연이—지금이 나중이야.

네오—…그 메모를 아직 들고 다니나.

연이—버린 적 없어. 발 내놔.

네오가 천천히 겉옷을 걷었다. 팔꿈치 위까지 비어 있었다. 우물의 푸른 빛이 팔을 지나 바닥에 어렸다.

연이—어디까지 갈 건데. 다리까지? 몸까지?

네오—빌린 자리를 갚는 중이야. 갚으면 끝날 거야.

연이—뭘 빌렸는지도 말 안 하고 갚는다고만 하면, 나는 뭘 어떻게 도와!

네오—돕지 않아도 된다. 네가 알면, 그게 값을 올린다.

연이는 투명한 발을 두 손으로 감쌌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손을 풀지 않았다.

연이—그럼 모르는 채로 잡고 있을게. 그건 값 안 올리지?

네오—…그건, 계산에 없던 거다.

바람이 멎자 우물 물도 잔잔해졌다. 물에 비친 손에 잠깐 색이 돌아왔다. 연이는 서둘러 그 윤곽을 메모장에 그렸다. 손가락 다섯 개를 빠뜨리지 않고.

윤달—모카 씨, 생일 알려 주면 달 자리 봐 드릴게요. 무료로.

모카—너 무료라는 말이 제일 수상해.

윤달—그럼 맞혀 볼까요. 손이 빠르고, 칭찬을 들으면 화를 내고, 남 밥은 꼭 먼저 챙기고.

모카—…그건 그냥 날 보고 말한 거잖아.

윤달—점의 절반은 관찰이에요. 나머지 절반은 용기고요.

연이—모카 얼굴 빨개졌다.

모카—불 앞에 오래 있어서 그래! 요리사 직업병이야!

그때 사원 종이 한 번 울렸다. 지붕 위의 달 하나가 옆 지붕으로 옮겨 갔다. 하룻밤이 지났다는 신호였다.

윤달—이 하늘에선 시간이 빨리 가요. 달이 이사할 때마다 하루.

연이—그럼 우리 벌써 하루 썼어요?

네오—서두르는 게 좋겠다. 이 하늘에서 늑장은 비싸다.

모카—다들 시간 아깝다면서 내 얼굴 얘기는 왜 했는데.

사원 안쪽에 둥근 방이 있었다. 바닥에 스물일곱 칸이 원을 그렸다. 칸마다 작은 등잔이 놓여 있었다.

윤달—숙녀분 달 자리를 찾아볼게요. 태어난 밤에 달이 어느 집에 묵었는지.

윤달이 바닥을 따라 걸었다. 숫양의 집들을 지나다 두 번째 칸에서 멈췄다. 등잔 하나가 스스로 켜졌다.

윤달—바라니. 품는 별이에요.

연이—품는 별?

윤달—배 속에 무언가를 품었다가 세상에 내보내는 별이요. 이 하늘에선 그런 사람을 그릇이라고 불러요.

연이는 저도 모르게 배를 눌렀다. 그 단어는 흑월이 쓰던 말이었다. 차갑게, 배고프게.

연이—그릇이라는 말, 싫어요. 흑월이 나를 그렇게 불러요.

윤달—흑월은 반만 말한 거예요. 그릇은 비어야 담긴다. 그건 흑월의 뜻이고.

윤달—바라니의 뜻은 달라요. 품었다가 내보낸다. 담아 두는 게 아니라 길러서 돌려준다.

연이는 배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다시 얹었다. 이번에는 조금 덜 무서웠다.

네오—네 달은 바라니 끝자락에 있어. 바로 다음은 불과 닿아 있는 크리티카고. 그 경계를 잘 봐.

연이—경계에 있다는 거야?

네오—한 걸음만 넘으면 칼을 든 별이 된다. 품는 사람과 베는 사람 사이. 그래서 고집이 센 거다.

연이—결국 고집 얘기로 가네!

연이—근데 윤달 씨. 서한비 씨 별도 볼 수 있어요?

윤달—생일을 모르면 못 봐요. 숙녀분은 알아요?

연이—택배 송장엔 이름이랑 동 호수만 있었어요. 생일은 안 써 있더라고요.

윤달—그럼 직접 물어봐야겠네요. 그 사람이 대답해 줄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둥근 방 천장에서 붉은 실 한 가닥이 내려와 연이의 손목에 감겼다. 차갑지 않았다. 체온처럼 미지근했다.

연이—이거 나한테 왜 감겨?

윤달—숙녀분 인연 실이에요. 끝을 따라가면 이어진 사람이 나와요.

모카—와. 그럼 이제 운명의 상대 공개야? 고양이 긴장해야겠네.

네오—긴장하지 않는다.

실이 둘로 갈라졌다. 한 가닥은 네오에게, 다른 가닥은 사원 바닥의 틈 아래로 향했다.

네오를 향한 실을 보던 연이의 얼굴이 굳었다. 가슴에 닿기 직전 실이 풀려 있었다. 몇 올만 남아 겨우 이어졌다.

연이—네오. 이거 왜 이래. 해졌어.

네오—오래 쓴 실이다. 원래 그렇다.

연이—원래 그런 게 어디 있어! 발도, 실도, 다 원래 그렇다고 할 거야?

네오는 손으로 실을 덮었다. 투명한 손 아래로 끊어질 듯한 가닥들이 비쳤다. 숨길 수 없었다.

윤달—숙녀분. 다른 한 가닥은요. 저건 아래로 가네요.

연이—(아래. 사슬 소리가 끌려간 곳.)

연이는 실을 살짝 당겨 보았다. 아래쪽에서 아주 약하게, 맞당기는 힘이 느껴졌다. 누군가 실 끝을 손가락으로 쥐고 있는 것처럼.

윤달—이 실은 한 생에서 생긴 게 아니에요.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끊기지 않을 만큼 굵어요.

연이—그럼 아래에 있는 사람이랑 나, 다른 생에서도 만났다는 거예요?

윤달—만났고, 무언가를 주고받았겠죠.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업이라는 게 원래 그래요.

모카—나쁜 거면 어떡해.

연이—그럼 더 따져야지.

사원 바닥이 쩍 갈라졌다. 틈 사이로 거대한 꼬리 끝이 솟았다. 뱀 꼬리처럼 비늘이 덮여 있었다. 사슬이 그 꼬리에 친친 감겨 있었다.

흑월—꼬리는 기억을 먹는다. 머리는 내일을 먹는다. 그릇아, 너는 어느 쪽부터 내어 주겠느냐.

모카—둘 다 안 줘! 우리 연이 배 안 고파!

윤달—공망으로 받아요. 다들 뒤로.

윤달이 장갑을 벗으려 하자 네오가 그 손목을 눌렀다. 투명한 손인데도 잡는 힘은 남아 있었다.

네오—아직 넓히지 마. 저건 꼬리야. 머리가 오기 전에 힘을 다 쓰면 안 돼.

윤달—고양이님이 제 걱정을 하시다니. 감동이네요.

꼬리가 바닥을 휩쓸었다. 등잔들이 쓰러졌다. 연이 손목의 붉은 실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아래쪽 끝에서 누군가 실을 붙잡고 있었다.

틈 아래에서 빗소리가 올라왔다. 맑은 사원에서 들릴 리 없는 소리였다. 그리고 낮고 우아한 목소리.

검은 호랑이—그 실, 놓지 마세요. 아직은.

꼬리가 다시 틈 속으로 가라앉았다. 바닥이 닫혔다. 연이의 손목에 실만 남았다. 아래쪽으로 곧게, 팽팽하게.

연이—저 목소리, 알아.

네오—연이야.

연이—말리지 마. 따질 게 산더미라고 했잖아. 내려가서 따질 거야.

네오—말리지 않는다. 옆에 선다고 했으니.

모카—나도 간다. 따지는 거면 내가 전문이야.

윤달—저는 따지는 사람들 뒤에서 박수 칠게요. 박수는 공짜니까.

넷은 사원 가장 깊은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 끝은 어둠 속으로 이어졌다. 연이의 손목에서 붉은 실이 길잡이처럼 앞장섰다.

계단 벽에 스물일곱 개의 달이 차례로 비쳤다. 내려갈수록 하나씩 꺼졌다. 마지막 달 하나만 남았을 때 빗소리가 아주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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