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꿀 운세다채로운 운세, 나를 위한 이야기

EP.32 · 44 / 73

검은 깃털의 주인

까마귀는 노래를 비웃음받던 소년 무성이었다. 깃털을 뽑으면 그가 죽는다.

한글 약 2,742자 · 읽는 시간 약 7분

쇠벽 방 안이 조용해졌다. 무곡을 감은 검은 실만 맥박처럼 꿈틀거렸다.

까마귀—무성이라는 이름은 모른다. 나는 관의 문지기다.

모카—거짓말. 너 대답하기 전에 오른발 엄지로 바닥 긁잖아. 무대 올라가기 전마다 그랬어.

까마귀의 발톱이 바닥에서 뚝 멈췄다. 막 쇠바닥을 긁으려던 참이었다.

연이—(진짜 긁으려고 했어. 모카, 이런 걸 다 기억하고 있었구나.)

까마귀—수달의 기억은 몰수 대상이다. 웃은 죄, 박자의 죄, 그리고 기억의 죄.

모카—그럼 다 가져가. 근데 가면은 벗고 가져가.

까마귀 가슴의 검은 깃털이 크게 뛰었다. 까마귀가 가슴을 움켜쥐었다. 날개 끝이 바들바들 떨렸다.

윤달—깃털이 거부하고 있어요. 이름을 들으면 뿌리가 흔들리나 봐요.

윤달—수달 씨, 계속 불러요. 이름을. 대신 크게 말고, 똑바로.

모카—무성아.

가면에 실금이 갔다. 이마에서 턱까지, 아주 가늘게.

모카—무성아. 해맞이 무대 다음 날, 너네 집 앞까지 갔었어. 문을 못 두드렸어.

가면이 반으로 갈라져 떨어졌다. 쇠바닥에 부딪혀 두 조각이 났다. 망토 깃이 스르르 내려앉았다.

그 아래 있던 것은 소년의 얼굴이었다. 연이 또래, 어쩌면 조금 어린. 눈 밑이 검게 꺼져 있었다. 오래 잠을 못 잔 얼굴이었다.

무성—…문 안 두드린 거, 알아. 창문으로 봤어. 한참 서 있다가 갔잖아.

모카—봤으면 나오지.

무성—나가면 또 웃을까 봐.

모카의 꼬리가 바닥에 축 내려앉았다. 박자를 치던 꼬리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몇 해 전 식상의 섬. 해맞이 축제의 새벽 무대였다. 아직 해가 정오에 멈추기 전, 바다 끝이 막 붉어지던 때.

무대 위에 소년이 서 있었다. 눈을 감고 있었다. 객석은 꽉 차 있었다. 그는 객석을 보면 떨린다고 늘 눈을 감고 불렀다.

무성—해야, 올라와라. 오늘 첫 노래는 너한테 주는 거야.

북이 울렸다. 소년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첫 소절에서, 목소리가 갈라졌다. 닭 울음 같은 소리. 아주 크게. 새벽 바다 끝까지 들릴 만큼.

객석 맨 앞줄에서 웃음이 터졌다. 한 사람이 웃자 옆 사람이 웃었다. 웃음은 파도처럼 뒤로 번졌다.

맨 앞줄 가운데에 작은 수달이 있었다. 꼬치를 든 채, 친구들 사이에서, 수달도 웃고 있었다.

소년이 눈을 떴다. 무대에 선 뒤 한 번도 보지 않던 객석을 보았다. 웃는 얼굴들. 그리고 그 사이의 익숙한 수달 얼굴.

소년은 마지막 소절까지 불렀다. 갈라진 목소리 그대로. 그리고 다시는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

모카—…나도 웃었어. 맨 앞에서.

연이—모카.

모카—친구들이 다 웃는데 나만 안 웃으면 이상하잖아. 그래서 웃었어. 일 초. 아니, 이 초쯤.

무성—삼 초.

모카—그래. 삼 초. 넌 그걸 셌구나.

모카가 꼬챙이를 내려놓았다. 늘 손에서 놓지 않던 쇠꼬챙이였다. 그리고 소년을 똑바로 보았다.

모카—미안해. 그 삼 초. 그거 계속 갚고 싶었어. 방법을 몰라서 꼬치만 구웠어.

연이—(모카가 맨날 숯불 앞에서 흥얼거리던 박자. 그게 이 애 노래였구나.)

무성의 입술이 떨렸다. 무언가 말하려 했다. 그런데 가슴의 깃털이 먼저 움직였다. 검은 실이 확 조였다.

무성—크윽…!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깃털 속에서 흘러나왔다. 소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흑월—삼 초의 사과로 몇 해의 침묵을 갚겠다고. 수달아, 값이 맞지 않는구나.

연이—흑월!

흑월—그 아이에게 물어보아라. 내가 깃털을 줄 때 무엇을 약속했는지.

해맞이 무대가 있던 날 밤. 섬 끝의 바닷가 언덕. 소년이 혼자 앉아 있었다. 목이 쉬어 있었다.

무성—노래 같은 거, 안 했으면 좋았을 텐데.

파도 소리 사이로 무언가 내려앉았다. 검은 깃털 하나. 바람도 없는데 소년의 무릎 위에 정확히 떨어졌다.

흑월—다시는 목소리가 갈라지지 않게 해 주마.

무성—…진짜요?

흑월—갈라질 목소리를 아예 없애면 된다. 네 것도, 남의 것도. 아무도 노래하지 않으면, 아무도 비웃지 않는다.

소년은 깃털을 가슴에 꽂았다. 통증 대신 온기가 번졌다. 이제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것 같았다. 숨었던 어깨에서 힘이 풀렸다.

그날 밤 소년의 목소리는 깃털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섬의 노래가 하나씩 사라졌다.

처음엔 시장 상인의 흥정 노래였다. 다음은 빨래터의 콧노래. 그다음은 아이들의 줄넘기 노래. 사라진 노래는 전부 같은 곳으로 갔다. 소년의 가슴, 검은 깃털 속으로.

깃털은 노래를 먹을수록 커졌다. 소년의 팔에 검은 깃이 돋았다. 등에 날개가 돋았다. 어느 날 아침 거울 속에는 까마귀가 서 있었다.

흑월—잘했다. 이제 너를 비웃을 사람은 없다. 아무도 노래하지 않으니까.

무성—…근데 왜 이렇게 조용해요. 귀가 아플 만큼.

흑월—그게 평화다.

무성은 거기까지 말하고 고개를 떨궜다.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쇠벽에서 떨어지는 녹 소리만 들렸다.

연이—그래서 식상의 섬에서 노래를 금지했구나. 네가 아니라 깃털이 원한 거였어.

무성—아니. 나도 원했어. 처음엔 진짜로 좋았어. 아무도 안 웃는 섬. 내가 만든 거야.

무성—근데 웃음만 없어진 게 아니더라. 박수도 없어졌어. 아무도 노래를 안 하니까.

네오—웃었던 손으로 박수도 쳤을 거야. 상처 준 기억만 골라 잘라 낼 수 있을까.

연이—(자기 팔이 저런데도 저 애 걱정부터 하네.)

무성—고양이 아저씨 말이 맞아. 그걸 알았을 땐 이미 깃털이 내 목에 뿌리를 내린 다음이었어.

모카—아저씨래.

네오—…지적할 때가 아니다.

무성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깃털에서 뻗은 실이 그의 목을 감고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쇳소리가 났다.

윤달—이제 알겠어요. 저 깃털이 이 애 목이에요. 숨이고 목소리고 다 저 안에 있어요.

연이—그럼 뽑으면.

윤달—숨이 같이 뽑혀요. 이 애는 죽어요. 제 공망으로 빨아들여도 결과는 같고요.

네오—하지만 안 뽑으면 무곡이 지워진다. 사흘 뒤 정오에.

연이—그건 너도 지워진다는 소리잖아!

네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목덜미까지 번진 잿빛이 숨을 쉴 때마다 흔들렸다. 들숨 끝에 쇳소리가 섞여 나왔다.

무성—뽑아.

연이—뭐?

무성—뽑아. 그럼 너희 고양이는 살아. 무곡도 살고. 몰수한 빛도 다 돌아가.

무성—어차피 나는 몇 해 전 그 언덕에서 끝난 거야. 지금은 깃털이 대신 숨 쉬어 주는 것뿐이고.

모카—헛소리하지 마!

무성—수달. 너 방금 사과했잖아. 그걸로 됐어. 진짜로.

연이는 네오를 보았다. 그다음 무성을 보았다. 둘 다 같은 소리로 숨을 쉬고 있었다. 쇳소리. 무언가에 목을 졸리는 소리.

연이—(하나를 살리려면 하나를 버리라고. 이거, 흑월이 제일 좋아하는 셈이야.)

네오—연이야. 내 걱정은 하지 마. 판단은 네가 해.

연이—(판단. 염정이 그랬지. 가두기만 한 불은 썩는다고. 내 침묵 때문에 다치는 사람이 생긴다고.)

연이는 지금까지 자기 불을 참아 왔다. 소리치면 네오가 다쳤으니까. 그런데 참는 동안, 다들 혼자서 대가를 치르겠다고 줄을 서고 있었다.

연이—안 뽑아.

무성—그럼 고양이가.

연이—고양이도 안 지워. 무곡도 안 지워. 너도 안 죽어. 셋 다.

흑월—욕심이 많구나, 그릇아. 저울은 그렇게 기울지 않는다.

연이의 가슴께에서 불이 올라왔다. 이번엔 터지는 불이 아니었다. 등불 하나만 한, 작고 곧은 불이었다.

연이—저울 안 써. 네 저울은 맨날 너한테 기울거든.

연이가 네오를 보았다. 그는 움찔하지 않았다. 잿빛도 더 번지지 않았다. 둘은 잠깐 눈을 마주쳤다. 다른 길이 있을지도 몰랐다.

네오—…안 아프다.

연이—(소리친 게 아니라 말한 거라서? 터뜨린 게 아니라 켠 거라서.)

윤달—뽑지도 않고 지우지도 않는다. 그럼 남는 방법은 하나예요.

연이—바꾸는 거. 忌를.

윤달—化忌를 化祿으로. 막힌 자리를 흐르는 자리로요. 이론상으로는 돼요. 해 본 사람은 없지만.

모카—이론상이 제일 무서운 말이야.

윤달—맞아요. 궁합도 이론상으로는 다 맞거든요.

연이—(忌는 빚이랑 비슷하다고 했어. 받을 걸 못 받아서 고인 자리.)

연이—무성이가 못 받은 거. 그게 뭔지 알 것 같아.

모두가 연이를 보았다. 무성까지. 연이는 모카의 등을 살짝 밀었다.

연이—박수. 그날 무대에서 못 받은 거.

무성—…박수 같은 거 필요 없어. 그런 걸로 깃털이 빠질 리가.

윤달—아뇨, 말이 돼요. 忌가 받을 걸 못 받은 자리라면, 받으면 풀려요. 다만 진짜여야 해요. 동정 박수는 장부에 안 찍혀요.

모카—진짜 박수.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연이—너 맨날 숯불 앞에서 흥얼거렸잖아. 그 노래 끝까지 들어 본 사람, 나밖에 없어. 꽤 좋았어.

모카—들었어? 언제부터?

연이—첫날부터. 랩은 진짜 못하던데, 그 노래는 좋았어.

모카가 무성을 보았다. 오래. 그리고 꼬리로 바닥을 한 번 쳤다. 톡.

그 순간 방 전체가 흔들렸다. 쇠벽의 녹이 우수수 떨어졌다. 천장 너머에서 종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흑월—사흘은 너무 길구나. 정오는 지금이다.

윤달—시간을 당겼어요! 무곡이 지워지기 시작해요!

묶인 별의 빛이 한 줄씩 꺼지기 시작했다. 네오가 무릎을 꿇었다. 종이 세 번째로 울렸다. 열두 번째 종이 울리면, 정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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