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꿀 운세다채로운 운세, 나를 위한 이야기

EP.10 · 13 / 73

정오 공연 작전

해를 되찾을 정오 공연 작전. 호랑이의 거래를 거절한 대가로 연이는 목소리를 빼앗긴다.

한글 약 2,771자 · 읽는 시간 약 7분

모카의 지하 부엌 벽에 커다란 종이가 붙었다. 맨 위에 삐뚤빼뚤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정오 공연 작전.

연이—자, 회의 시작. 목표는 해를 정오까지 올리는 것.

모카—동화 한 줄 듣고 작전을 짜는 돼지는 처음 봐.

연이—그 동화 꺼낸 게 너거든.

영냥이—셋만 준비하자. 높은 무대, 함께 부를 사람들, 그리고 첫 소리를 낼 용기.

연이—무대는 섬에서 제일 높은 데. 검은 깃털이 떨어졌던 그 무대.

모카—해시계 무대. 원래 정오마다 공연하던 데야. 지금은 까마귀 둥지고.

연이—사람들은 내가 모을게. 홍보는 자신 있어.

모카—노래 금지인 섬에서 노래 공연 홍보를 어떻게 하는데.

연이—노래라고 안 쓰면 되지. 정오에 꼬치 공짜. 이러면 다 와.

모카—그 꼬치 누가 굽는데.

연이—이 섬에서 꼬치 제일 잘 굽는 수달이 누구더라.

영냥이—목소리가 불이 되는 돼지가 홍보를 하겠다고.

연이—그건 조절할게. 아마.

모카—그럼 마지막. 첫 소리는 누가 내는데.

연이와 영냥이가 동시에 모카를 보았다. 모카는 국자를 든 채 뒷걸음질 쳤다.

모카—왜 나를 봐.

연이—이 섬에서 박자 제일 좋은 수달이 누구더라.

모카—레시피라니까!

영냥이—정오가 되면 레시피를 읽어. 멀리까지 들리게.

모카—…고양이 너, 농담도 하는구나.

영냥이—농담 아니다.

연이는 회색 시장으로 나섰다. 사람을 모으려면 먼저 사람을 만나야 했다.

시장은 여전히 조용했다. 그런데 골목 어귀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톡, 톡톡. 젓가락이 나무 상자를 두드리는 소리였다.

연이—소리가 나네? 도장 안 맞은 사람이 있어?

상자 앞에 열 살쯤 된 남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손등이 깨끗했다. 도장이 없었다. 아이는 연이를 보더니 젓가락을 등 뒤로 숨겼다.

연이—숨기지 마. 나 단속반 아니야. 보다시피 돼지야.

아이는 한참 연이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다시 상자를 두드렸다. 톡, 톡톡, 톡.

연이—박자 좋다. 너 북 쳐 봤구나?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갸웃했다. 언제 쳐 봤는지 생각이 안 나는 얼굴이었다.

연이—이름이 뭐야?

아이의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다시 열렸다. 아무 이름도 나오지 않았다.

연이—괜찮아. 생각 안 나면 나중에 말해도 돼.

영냥이—아이야. 엄마나 친구가 너를 뭐라고 부르지?

아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 질문은 아주 쉬운데 왜 답이 없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아이는 손가락으로 상자 위에 무언가를 쓰려 했다. 첫 획을 긋고 멈췄다. 두 번째 획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랐다.

영냥이—연이야, 저 아이 손목을 봐.

아이의 손목에 금실 자국이 있었다. 실을 묶었다가 끊어 낸 것처럼 가느다란 흉터였다. 금빛이 아직 조금 남아 있었다.

영냥이—빚으로 묶인 줄을 끊은 자국이야. 그런데 이름도 같이 끊겨 있어.

연이—누가 그랬는지 알 것 같아.

연이는 지하 무대 바닥에 떨어져 있던 금실 한 올을 떠올렸다. 같은 색이었다.

연이—그럼 일단 내가 부를게. 북 대장. 어때?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 가장 큰 소리로 상자를 두드렸다. 톡, 톡, 쿵.

연이—마음에 든다는 뜻이지? 북 대장, 정오에 우리랑 공연하자.

바닷가 언덕. 영냥이는 바위 위에 앉아 수업을 시작했다. 학생은 돼지 하나, 수달 하나, 북 대장 하나였다.

영냥이—불을 쓰는 법 두 가지. 하나는 식신, 하나는 상관.

연이—오, 드디어 스킬 트리 열리는 거야?

영냥이—트리는 없다. 꼬치만 있다.

영냥이가 모카에게 눈짓했다. 모카가 꼬치 여섯 개를 석쇠에 올렸다.

영냥이—식신부터. 불을 꼬치에 보내라. 화내지 말고. 맛있어져라, 하고.

연이—맛있어져라.

연이는 앞발을 석쇠 쪽으로 내밀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다시 내밀었다. 꼬치 하나가 살짝 데워졌다.

모카—미지근해. 손님한테 내면 별 한 개야.

연이—너 지금 내 마음에 불 지르는 거 알아?

그 순간 꼬치 여섯 개가 한꺼번에 불길에 휩싸였다. 순식간에 숯이 되었다.

모카—내 꼬치!

영냥이—그게 상관이다.

연이—어, 미안. 화가 나니까 확 나갔어.

영냥이—같은 불이다. 마음이 어디를 보고 있느냐만 다르다. 다시.

꼬치 여섯 개가 다시 올라갔다. 연이는 눈을 감았다. 할머니 포장마차를 떠올렸다. 노래 못 하는 손님에게 두 개를 줬다는 할머니.

석쇠 위에서 간장이 졸아드는 소리가 났다. 꼬치들이 고르게 노릇해졌다. 모카가 하나를 집어 맛을 보았다.

모카—…별 네 개.

연이—네 개? 다섯 개는 왜 안 돼?

모카—다섯 개는 우리 할머니 거야. 넘보지 마.

영냥이—이제 상관. 상관은 날이다. 날은 좁게 써야 한다. 저 밧줄만 끊어라.

영냥이가 바위 끝에 매달린 밧줄 하나를 가리켰다. 밧줄 끝에는 빈 냄비가 걸려 있었다.

연이—말로 끊으라는 거지? 한 마디로?

영냥이—가장 짧고 가장 정확한 말로.

연이—끊어!

불꽃 글자 두 개가 날아갔다. 밧줄 옆의 바위를 깎고, 냄비를 날려 버리고, 바다로 떨어졌다. 밧줄은 멀쩡했다.

모카—그 냄비 할머니 거야!

연이—오늘 할머니 유품 너무 많이 죽는다.

연이는 열 번 더 외쳤다. 아홉 번째에 밧줄이 끊어졌다. 북 대장이 상자를 두드렸다. 쿵, 쿵.

영냥이—됐다. 지금 그 느낌을 기억해라.

영냥이가 일어서다가 잠깐 비틀거렸다. 오른 앞발을 디딜 때였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다시 앉았다.

연이—영냥아, 다리 저려?

영냥이—고양이도 오래 앉아 있으면 저린다.

모카—고양이 나이가 몇인데.

영냥이—묻지 마라.

연이—할아버지 고양이구나.

영냥이—묻지 말라고 했다.

모카—이제 내 차례지. 연습.

연이—오오, 레시피 낭독 리허설!

모카는 바위 위에 올라섰다. 돼지와 고양이와 아이가 올려다보았다. 모카는 입을 열었다.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도장 때문이 아니었다. 모카의 손에는 도장이 없었다.

모카—…눈 감아. 다들.

연이—우리 셋이 보는데도 안 돼?

모카—셋이 제일 무서워. 냄비는 나를 안 봐.

북 대장이 가방에서 냄비 뚜껑을 꺼내 제 얼굴 앞에 들었다. 연이도 따라 했다. 영냥이는 앞발로 눈을 가렸다.

모카—간장 두 숟갈, 설탕 한 숟갈, 불은 세게, 마음은 약하게.

작은 목소리였다. 그래도 박자가 있었다. 북 대장이 뚜껑 뒤에서 무릎을 두드렸다. 연이의 꼬리가 박자에 맞춰 흔들렸다.

연이—거봐. 뚜껑 하나 사이에 두면 되잖아.

모카—정오에 섬사람 다 앞에서 뚜껑 쓰고 있으라고 할 거야?

연이—그것도 나쁘지 않은데? 뚜껑 축제.

해 질 녘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저녁. 연이는 홍보 전단을 품에 안고 골목을 돌았다. 전단에는 그림만 그렸다. 해와 꼬치와 웃는 얼굴.

골목 모퉁이에서 등불이 하나 꺼졌다. 연이는 걸음을 멈췄다. 이제 이 순서를 알았다.

검은 호랑이—전단이 귀엽네. 그림 실력은 별 둘.

연이—남의 홍보물에 별점 매기지 마.

검은 호랑이—정오 공연. 소문 다 났어. 까마귀도 알아.

연이—…벌써?

검은 호랑이—이 섬에선 소문이 노래보다 빨라. 노래는 금지고 소문은 아니니까.

호랑이는 장부를 펼쳤다. 빈 줄이 한 칸 있었다. 맨 위에 연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검은 호랑이—그래서 제안. 박수 빌려줄게. 정오에 무대 아래서 천 명이 너한테 박수를 쳐 줄 거야.

연이—천 명?

검은 호랑이—박수가 크면 해도 올라가. 노래가 좀 서툴러도. 확실하게.

연이는 장부를 보았다. 빈 줄이 반짝였다. 쉬워 보였다. 너무 쉬워 보였다.

연이—이자는?

검은 호랑이—이제 그런 것도 묻네.

연이—지하 무대에서 배웠어. 여울 누나 목소리 값으로.

검은 호랑이—나중에 정해. 너한테는 싸게 해 줄게.

연이—싫어.

호랑이의 꼬리가 멈췄다.

연이—빌린 박수로 뜬 해는 갚을 때 또 지잖아. 그럼 이 섬은 평생 너한테 이자 내면서 살아야 하고.

연이—서툴러도 진짜 박수로 띄울 거야. 안 뜨면, 내일 또 부르고.

검은 호랑이—…내일이 없을 수도 있는데?

연이—너 지금 걱정해 주는 거야?

검은 호랑이—장사 얘기야. 손님이 사라지면 장부가 비잖아.

연이—그럼 오늘 잘 부르면 되지.

호랑이는 장부를 덮었다. 덮는 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컸다.

검은 호랑이—빚은 남겨 두면 불어나. 안 진 빚도 마찬가지야. 거절한 값은 따로 받아.

검은 호랑이—그리고 연이. 오늘 밤엔 지붕에 올라가지 마.

연이—그건 무슨 뜻이야? 경고야, 협박이야?

대답은 없었다. 등불이 다시 켜졌을 때 골목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날 밤, 연이는 잠이 오지 않았다. 지하 부엌의 뚜껑을 살짝 밀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하지 말라는 일은 늘 궁금했다.

연이—연습 한 번만. 아주 작게.

연이는 해시계 무대 쪽을 바라보며 콧노래를 불렀다. 솔에서 미로. 그물 속 재판정에서 비웃음을 산 그 음정이었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콧노래가 끝날 무렵, 달이 없는 하늘이 한 군데 더 검어졌다. 날개였다.

까마귀—정오에 무대를 띄울 목소리.

까마귀—몰수한다.

연이—잠깐, 판결은 재판정에서만, 아니 그런 법 없지 참.

까마귀가 부리를 벌렸다. 연이의 목에서 빛나는 실이 풀려 나왔다. 실은 솔과 미의 모양으로 떨리며 가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연이는 소리치려고 했다. 숨이 목을 지나갔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까마귀는 날아갔다. 지붕 위에는 돼지 한 마리와 검은 깃털 하나만 남았다.

아래에서 뚜껑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영냥이가 올라오고 있었다. 연이는 그를 불렀다.

영냥아. 입 모양은 분명 그렇게 움직였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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