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꽃돼지가 되었다
Code Destiny · 1,005자
제1화. 꽃돼지가 되었다
전날 밤에 침착한 척했지만, 연이는 아침부터 몸이 조금씩 어긋났다.
알람은 또 가볍게 세 번만 울리고 꺼졌다.
"오늘은 조용히 버티는 날이겠지."라고 혼잣말했는데, 출근버스 앞에서 카드가 또 삑댔다.
뒤편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다시 대주세요."는 기계음처럼 들렸고, 연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연이는 카드에 입술을 대고 중얼거렸다.
"넌 오늘도 귀찮게 굴었네."
그 말에 카드가 마지막에야 찍혔다.
입장하자마자 팀 채팅방이 깜빡였다.
연이에게만 비치는 신호였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두 줄이 이상했다.
"정말 늦었어요."라고 보낸 사람의 메시지가, 보내고 4초 뒤에야 전달됐다.
연이는 화면을 보다가 이내 찡그렸다.
"너무 늦은 리액션. 내가 오늘 늦은 게 아니었잖아?"
그 순간, 같은 문장이 반대편에서도 떠올랐다.
[오늘은 바람이 아니라, 판단이 느리다.] [운명은 오해를 가장 쉽게 흉내 내고 있다.]
연이는 웃음이 나왔다가 사라졌다.
하필이면 카페 라이트에서 받은 바닐라 라떼는 엉뚱한 메뉴 이름이었다.
입 안이 뜨거웠고, 혀끝이 얼얼해졌다.
진짜 화가 날 만큼, 별거 아닌 일들이 동시에 꼬였고, 그것들이 합쳐져서 하나의 표지판이 됐다.
연이는 계산대 영수증을 접어 가방에 넣고, 한 칸 물러서서 노트를 꺼냈다.
표지 위에는 이렇게 적혔다.
[목표: 오늘은 반응보다 기록.] [원칙: 먼저 보자.] [실수: 혼자 견디지 말고 동료의 반응을 먼저 확인하자.]
문장을 쓴 뒤 폰은 또 진동했다.
연이는 고개를 들었다.
"너도 날 그렇게 부르냐?" 하고 묻고는 자기 대답을 먼저 했다.
"괜찮아. 지금은 다 꽃이 아니라 돼지로 굴겠다."
그날 밤, 무성한 실루엣의 목소리는 다시금 물었다.
"이건 운명이야? 네가 만든 패턴이야?"
연이는 대답 대신 문장을 보냈다.
"둘 다 아니라면, 지금 당장은 다리 하나씩 밟아 가는 연습이다."
상대는 잠깐 침묵했다.
그 침묵에서, 연이는 오해가 생길 틈을 보았다.
기록이 늦게 도착하면, 사람은 먼저 결론을 미리 보내고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연이는 손목시계에다 말했다.
"오늘은 반응이 아니라 증거를 본다."
그리고 아주 작은 문장을 덧붙였다.
[첫 날은 실패해도, 연결은 남는다.] [다음 목표: '태양 과증폭'의 현실 반응 확인.]
그 줄을 쓰는 동안 연이 표정은 더는 지쳐 보이지 않았다.
오해가 먼저 왔고, 지연이 뒤따랐고, 파장은 천천히 남을 거였다.
연이는 노트 끝에 점 한 개를 찍고, 손으로 지워지지 않는 눈빛으로 다시 길로 나섰다.